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센치해짐을 느껴 따뜻한 차 한잔을 앞에두고 모처럼 눈을 감고 시를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 봅니다.
가을비 / 박형준
창문을 여니
비에 떨어져 나가는
잎새 사이로 반짝인다
빈 길을 걸어
돌아오는 이의
작은 기침
오래 집을 나간 사람
돌아보게 만드는 가을비
- 박형준,『불탄 집』(천년의시작, 2013)
가을비 / 도종환
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
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
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
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
잎들이 지고 있습니다
어제 우리 사랑하고
오늘 낙엽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
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
바람만이 불겠지요
바람이 부는 동안
또 많은 사람들이
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
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
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
피었던 꽃들이 오늘 이울고 있습니다.
- 도종환,『내가 사랑하는 당신은』(실천문학사, 1988)
가을비 / 신경림
젖은 나뭇잎이 날아와 유리창에 달라붙는
간이역에는 찻시간이 돼도 손님이 없다
플라타너스로 가려진 낡은 목조 찻집
차 나르는 소녀의 머리칼에서는 풀냄새가 나겠지
오늘 집에 가면 헌 난로에 불을 당겨
먼저 따끈한 차 한잔을 마셔야지
빗물에 젖은 유행가 가락을 떠밀며
화물차 언덕을 돌아 뒤뚱거리며 들어설 제
붉고 푸른 깃발을 흔드는
늙은 역무원 굽은 등에 흩뿌리는 가을비
- 신경림,『쓰러진 자의 꿈』(창작과비평사, 1993)
가을비 / 최영미
내 불면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
사나운 서른여섯 해를 잠재웠던 입맞춤
그 밤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
속삭이네, 아우성치네
환멸의 수의를 입고 내려와
주룩주룩, 밤의 창문에 엉겨붙네
사납게 휘몰아쳐 내 목을 조이는
그 빗소리, 나 못 듣겠네
미친 사랑노래가 벼락을 맞고 비틀거리네
가! 가! 저 환장할 가을비
내 불면 속으로 쳐들어오는 이여.
- 최영미,『꿈의 페달을 밟고』(창작과비평사, 1998)
가을비 / 이정록
단 한 번의
빗나감도 없이
오직 정타뿐이어서
벌레 한 마리
다치지 않는
저 참깨 터는 소리
불길 헤집던 부지깽이가
나이테도 없는 빈 대공을
어루는 소리
골다공증의 뼈마디와
곳간 열어젖힌 꼬투리가
긴 숨 내쉬는 소리
비운 것들의
복주머니 속으로만
저 초가을 빗소리
- 이정록, 『의자』(문학과지성사, 2006)
가을비 / 박형준
창문을 여니
비에 떨어져 나가는
잎새 사이로 반짝인다
빈 길을 걸어
돌아오는 이의
작은 기침
오래 집을 나간 사람
돌아보게 만드는 가을비
- 박형준,『불탄 집』(천년의시작, 2013)
가을비 / 도종환
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
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
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
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
잎들이 지고 있습니다
어제 우리 사랑하고
오늘 낙엽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
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
바람만이 불겠지요
바람이 부는 동안
또 많은 사람들이
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
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
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
피었던 꽃들이 오늘 이울고 있습니다.
- 도종환,『내가 사랑하는 당신은』(실천문학사, 1988)
가을비 / 신경림
젖은 나뭇잎이 날아와 유리창에 달라붙는
간이역에는 찻시간이 돼도 손님이 없다
플라타너스로 가려진 낡은 목조 찻집
차 나르는 소녀의 머리칼에서는 풀냄새가 나겠지
오늘 집에 가면 헌 난로에 불을 당겨
먼저 따끈한 차 한잔을 마셔야지
빗물에 젖은 유행가 가락을 떠밀며
화물차 언덕을 돌아 뒤뚱거리며 들어설 제
붉고 푸른 깃발을 흔드는
늙은 역무원 굽은 등에 흩뿌리는 가을비
- 신경림,『쓰러진 자의 꿈』(창작과비평사, 1993)
가을비 / 최영미
내 불면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
사나운 서른여섯 해를 잠재웠던 입맞춤
그 밤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
속삭이네, 아우성치네
환멸의 수의를 입고 내려와
주룩주룩, 밤의 창문에 엉겨붙네
사납게 휘몰아쳐 내 목을 조이는
그 빗소리, 나 못 듣겠네
미친 사랑노래가 벼락을 맞고 비틀거리네
가! 가! 저 환장할 가을비
내 불면 속으로 쳐들어오는 이여.
- 최영미,『꿈의 페달을 밟고』(창작과비평사, 1998)
가을비 / 이정록
단 한 번의
빗나감도 없이
오직 정타뿐이어서
벌레 한 마리
다치지 않는
저 참깨 터는 소리
불길 헤집던 부지깽이가
나이테도 없는 빈 대공을
어루는 소리
골다공증의 뼈마디와
곳간 열어젖힌 꼬투리가
긴 숨 내쉬는 소리
비운 것들의
복주머니 속으로만
저 초가을 빗소리
- 이정록, 『의자』(문학과지성사, 2006)
와유(臥遊) / 안현미
내가 만약 옛사람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밤 내리는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
'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'
허면, 훗날의 그대는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국화술에 취하리
- 안현미,『이별의 재구성』(창비, 2009)
가을비 낙숫물 / 문태준
흥천사 서선실(西禪室) 층계에
앉아 듣는
가을비 낙숫물 소리
밥 짓는 공양주 보살이
허드렛물로 쓰려고
처마 아래 놓아둔
찌그러진
양동이 하나
숨어 사는 단조로운 쓸쓸한
이 소리가 좋아
텅 빈 양동이처럼 앉아 있으니
컴컴해질 때까지 앉아 있으니
흉곽에 낙숫물이 가득 고여
이제는 나도
허드렛물로 쓰일
한 양동이 가을비 낙숫물
- 문태준,『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』(문학동네, 2018)
와유(臥遊) / 안현미
내가 만약 옛사람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밤 내리는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
'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'
허면, 훗날의 그대는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국화술에 취하리
- 안현미,『이별의 재구성』(창비, 2009)
ISTJ 인 나. (2) | 2024.11.11 |
---|---|
피크민이랑 걸어볼까? 게임과 걷기의 시너지 효과 (2) | 2024.10.23 |
가을 비, 그 쓸쓸함 (3) | 2024.10.18 |
간절기 룩 (1) | 2024.10.15 |
인간의 평균 수명 (4) | 2024.10.14 |